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대해 무관심한 것도 사실이다.
어릴 때에는 친구들과 또래사이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는 것이 당연한 때였다.
사회초년시기에는 어른들과 조직에서 인정받기 위해 애쓴다.
어느 정도 사회의 때를 뭍혀가면서 관계라는 것에 무감각해진다.
군대시절 알게된 동기가 있다. 사회에 나와서도 근처에 살아 더 친해졌다.
나이는 한살 많지만 그래도 편하게 서로의 속내를 이야기 했다.
나는 나름의 시니컬한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 생각을 돌려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 동기는 애민한 사람이었다. 사회에서도 아직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만큼.
대학원 생활에서도 상처를 받았다. 힘겹게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동기에게 내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어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 친구의 장점을 경제적 활동과 연계해 주기위해서도 노력했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 사람을 소개해줬고, 내가 기회가 있고 내게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는 얘길 들을 때 동기를 먼저 떠올렸다.
그런 과정에서 그친구가 상처받을 일도 생겼을 것이고, 내가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준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의도와 신뢰를 더 크게 생각했고 나름의 기회를 더 많이 가져다 줬다고 본다.
그런 사람이 최근에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연락을 하면서 내 연락을 피했다. 내가 그 친구에게 어떤 상처를 준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은 내게 어떤 미안함이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 친구를 믿고 있고,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몇번의 연락에도 답이 없던 사람이 내가 소개시켜 줘서 알게된 지인에게는 연락을 했다. 사회복지사라는 자격증도 내가 기회를 가지고 함께 해보자는 것으로 시작했던 사람이다. 그런 기회가 나로 인해 시작된 것을 나는 내세우기도 싫고 그저 다양한 기회의 한 부분을 그 친구도 함께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그친구는 내가 만들어준 기회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고향에서 안정적인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그렇지만 씁씁함이 남는다. 내가 한 인간에게 상처를 받을 만큼 감수성이 애민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내가 그 사람을 신뢰하고 믿고 생각했던 만큼 그 사람이 내게 가진 생각이 그정도 였나를 생각하면, 씁쓸하다. 나는 좋은 소식을 듣고 한번 연락을 했지만 답이 없다.
이제는 그 사람의 한계를 그리고 내 영역에서 어울릴 수 없는 사람으로 그리고 어느정도의 수준으로 자신의 영역을 찾아가는 사람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그에 대한 실망도 상처도 사치이다. 내 스스로에게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에...
그저 한 사람으로 서로가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내 영역에서 배제됨을 선택한다. 그에게 나는 이미 배제되어 있었겠지만 무튼 인간의 관계는 나이를 들어감에도 여러가지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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